1928년 프랑스 파리출생의 로제 바댕은 그가 연출한 작품보다 자신과 같이 작업했던 여배우들과의 로맨스와 스캔들로 더 많이 알려진 인물이다.
본명은 Roger Vladimir Plemiannikov이며 그의 아버지 Igor Plemiannikov는 우크라이나에서 프랑스로 이주해온 벨로루시인으로 이집트주재 프랑스 부영사를 지냈으며 어머니는 프랑스 여배우 Marie-Antoinette Ardilouse이다.
16세때 연극무대를 통하여 배우로 데뷔한 그는 파리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다 중퇴하고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하여 1950년 시나리오작가로 프랑스 영화계에 입문하였고 단역배우로 스크린에 모습을 나타내기도했다. 1953년 마르끄 알레그레 감독의 코미디 영화 [줄리에타]에 조감독으로 참여하였으며1956년 첫번째 아내인, 모델출신의 브리짓드 바르도를 유럽 최고의 관능미를 가진 스타로 끌어올린 데뷔작 [그리고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 Et Dieu... créa la femme]을 발표하였다.
특히 이 작품에서 브리짓드 바르도가 맨발로 테이블위에 올라서서 춤을 추는 장면은 한동안 프랑스 영화사상 가장 에로틱한 장면으로 평가받았으며 브리짓드 바르도는 이 작품 하나로 일약 국제적인 섹스심볼로 부상하였다.
하지만 15세의 어린나이의 브리짓드를 만나 브루조아인 브리짓드 부모의 반대를 무릎쓰고 강행한 바댕의 첫번째 결혼 생활은 아이러니하게도 데뷔작의 대성공 직후인 1957년 파국을 맞았다.
1958년 덴마크 출생의 여배우 아네트 바댕과 두번째 결혼생활을 시작한 바댕은 1959년 아네트와 잔느 모로를 캐스팅하여 쇼데를로 드 라끌로의 원작 소설을 현대적으로 각색한 [위험한 관계 Liaisons dangereuses, Les]를 완성하였으며 호러물 [피와 장미 Et mourir de plaisir (60)]을 비롯하여 브리짓드 바르도 주연의 로맨스 [베개위의 사랑 Repos du guerrier, Le (62)] 까드린느 드느뷰 주연의 [부도덕과 도덕 Vice et la vertu, Le (63)] 모니카 비티 주연의 [애정의 성 Château en Suède]등의 60년대 작품을 발표했다.
1965년 대 배우 헨리 폰다의 딸이며 아메리카 뉴시네마를 대표하는 피터 폰다의 누이동생인 제인 폰다와 세번째 결혼을 하였으며 1968년 제인 폰다가 주연한 자신의 대표작이자 아방가르드 계열의 SF로 꼽히는 [바바렐라]를 완성하였다. 하지만 제인 폰다의 결혼 생활중에도 여배우 까뜨린느 드느뷰와의 염문을 뿌리며 후에 배우로 성장한 아들 크리스티안 바댕 까지 낳은 그는 결국 1973년 제인 폰다와 이혼하고 1975년 스위스 출신의 의상 디자이너인 까드린느 슈나이더와 4번째 결혼식을 올렸다.
1980년 미국시장으로 진출하여 저예산의 에로틱 무비 [나이트 게임]을 연출했으며 1988년 자신의 데뷔작을 리메이크한 미국판 [그리고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 And God Created Woman]를 발표했으나 이 작품은 무참한 흥행실패를 불러왔고 주연 여배우인 레베카 드 모네이는 1989년 레지어워드 최악의 여배우 후보에 오르는 불명예를 안았다.
이후 영화계를 떠나 TV물 연출로 90년대를 보낸 바댕은 2000년 11월 프랑스 파리에서 암으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