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츠 랑과 함께 독일 무성영화 시대를 대표하는 거장 무르나우는 1888년 독일 라인강 북부의 빌러펠트에서 출생했다. 본명은 Friedrich Wilhelm Plumpe 이며 무르나우라는 이름은 독일의 한 도시이름에서 따온것이다.
하이델베르그 대학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무르나우는 1차 대전이 발발하자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하였으며 1919년 [우울한 소년 Der Knabe in Blau]이라는 제목의 54분짜리 흑백 무성영화로 데뷔하였으나 불행히도 이 작품은 현재 소실되어 찾아 볼 수가 없다.
1922년 자신의 대표작이자,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를 각색한 작품 중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를 받는 클래식 호러 [노스페라투 Nosferatu, eine Symphonie des Grauens]를 발표하였으며 1926년 괴테의 [파우스트]를 영화화한 [Faust - Eine deutsche Volkssage]를 완성하고 같은 해 자신의 스탶들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다.
헐리우드에 도착한 무르나우는1927년 20세기 폭스사에서 첫번째 작품인 [선라이즈 Sunrise: A Song of Two Humans]를 발표하고 평단의 호평을 끌어냈으며 이 작품은 1929년 아카데비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비롯한 3개부문에서 수상하였다.
1928년 젊은 곡예사들의 애기를 다룬 드라마 [네 악마 4 Devils]를 연출한 무르나우는 1930년 폭스와의 세번째 작품 [Our Daily Bread]의 제작에 착수했으나 끝내 완성을 보지 못하고 폭스사와의 계약을 파기한 후, 다큐멘터리 작가인 로버트 플래허티와 함께 타히티 섬으로 건너가 로맨틱 어드벤처물 [Tabu: A Story of the South Seas]을 연출했다. 하지만 무르나우는 자신의 마지막 작품의 극장개봉을 지켜 보지 못한채 1931년 3월 11일 캘리포니아주 산타 바바라의 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