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러브 스토리"라는 짧은 한 문장으로 자신의 모든 작품세계를 설명할 수있는 서정적 로맨스의 대가 막스 오퓔스는 1902년 독일의 사라부르켄지방에서 태어났다.
유복한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17세가 되던 1919년부터 연극무대에 서기 시작했으나 매우로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1924년 이후 연출가로 전향하여, 슈트가르트, 도르트문트, 프랑크푸르트, 비엔나 등지를 돌며 연극을 무대에 올렸다.
1929년 독일 최대의 프로더션 UFA(Universum Film AG)에 몸담으면서 영화산업에 뛰어든 오퓔스는 이후 베를린에 정착하여 영화 연출을 시작했다. 1931년 [대구 간유를 갖는게 낫겠어 Dann schon lieber Lebertran]라는 단편 코미디 영화를 연출한 그는 1933년 연출작인 로맨스 드라마 [리벨라이 Liebelei ]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나 정작 이 작품의 크레딧에는 그의 이름이 오르질 않았다.
1933년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가족과 함께 프랑스로 이주한 그는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오가며 10여편의 영화를 발표했으며 1938년 프랑스 시민권을 획득하였다. 하지만 1940년 프랑스마저 나치 정권에 함락되자 다시 망명의 길에 오른 오퓔스는 스위스와 이태리를 거쳐 결국 미국에 도착하였다.
1941년 헐리우드에 정착키로 한 오퓔스는 다소 긴 공백의 시간을 보낸후에서야 영화 연출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으며 1947년 헐리우드에서의 첫 작품인 더글라스 페어뱅크스 Jr.주연의 모험극 [망명 The Exile]을 연출하였다.
1948년 자신의 대표작이자 로맨스 무비의 클래식으로 꼽히는 걸작 [미지의 여인으로부터 온 편지 Letter from an Unknown Woman]로 명성을 얻었으며 1949년 제임스 메이슨이 주연한 두편의 필름 느와르 [포획 Caught]와 [무모한 순간 The Reckless Moment]를 연출하고 다시 프랑스로 건너갔다.
1950년 프랑스에 도착한 그는 시몬느 시뇨레가 주연한 [La Ronde]를 발표하였으며 1954년 조국인 독일로 돌아가 자신의 후기 걸작이자 비운의 작품으로 남은 [롤라 몽떼 Lola Montès]를 연출하였다. 1957년 류마티스성 질환으로 사망한 오퓔스는 비록 독일 함부르크에서 숨을 거두었지만 그의 시신은 자신의 작품 인생 대부분을 보낸 프랑스 파리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