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 스웨덴의 웁살라에서 루터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베리만은 극우 보수파였던 아버지의 영향아래 종교적 규율이 지배하는 엄격한 환경에서 성장하였다.
10세대 부터 연극을 접하기 시작한 베리만은 1937년 스톡홀름 대학으로 진학하여 미술과 문학을 전공했으며 비록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지만 재학시절 부터 다수의 희곡을 집필했으며 1946년 [위기 Kris ]로 장편데뷔하였으며 연극계와 영화계를 오가며 다수의 연극과 영화를 연출했으며 1952년 스웨덴 말뫼시의 시립극작 간독으로 취임했다.
19 세기 모던 드라마의 사실주의와 북구 유럽의 신비주의를 기초로 하여 신학적 회의를 담은 작품세계를 구축한 그는 1957년 전세계 영화인들을 놀라게 한 형이상항 이미지의 신학적 세계 [제 7인의 봉인]으로 깐느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으며 1958년 자신의 작품중 가장 온유한 서정성을 담은 [산딸기 Smultronstället]로 베를린 영화제 금곰상을 수상했다.
1962년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수상작인 [어두운 유리를 통해 Såsom i en spegel (61)]로 시작되어 [겨울빛 Nattvardsgästerna (62)]그리고 [침묵 Tystnaden (63)]으로 완성된 신에대한 신뢰와 의혹이 교차하는 인간내면의 심연을 탐구한 신의 침묵 3부작을 완성하였으며 1966년 60년대 세계영화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작품중 하나이며 베리만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미스테리 드라마 [페르소나 Persona]를 발표했다.
66년작 [페르소나]에 이어 완성된 [늑대의 시간 Vargtimmen (68)]과 [치욕 Skammen (68)]은 베리만 자신의 예술가로서의 좌절과 고통을 담은 또 하나의 3부작으로 엮어졌으며 1972년 단짝 촬영감독스벤 닉비스트가 아카데미 최우수 촬영상을 수상한 자신의 또 하나의 대표작 [외침과 속삭임 Viskningar och rop]을 완성했다.
1975년 스톡홀름 대학으로부터 명예 철학박사 학위를 수여받은 베리만은 1976년 개인소득세 탈세혐의로 체포되었다 한때 그 충격으로 입원하였으며 "다시는 조국 스웨덴에서 영화를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독일로 건너가 뮌헨에 정착하였다.
망명이후 한때 미국에서 자신의 작품활동 가능성을 타진하던 베리만은 1977년 라틴계 거물 프로듀서 디노 드 로렌티스가 제작한 자신의 두번째 영어 영화이자 국외에서 제작한 첫 작품인 [뱀의 알 The Serpent's Egg]을 발표했으며 1978년 영국계 노르웨이 프로덕션이 투자하고 조국 스웨덴 출신의 거물 배우 잉그릿드 버그만과 한때 자신의 연인이었던 리브 울만이 공연한 [가을 소나타 Höstsonaten]를 완성한 후, 독일의 자본으로 제작된 결혼에 대한 염세적 고찰 [마리오네트의 삶으로 부터 Aus dem Leben der Marionetten (80)]를 발표하고 자신의 망명 3부작을 완성했다.
1982년 망명으로부터 일시 귀국하여 자신의 후기 대표작인 미스테리 환타지 [화니와 알렉산더 Fanny och Alexander]를 연출하고 1984년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상을 수상한 베리만은 이 작품을 마지작으로 사실상의 은퇴선언을 했으며 이후, 몇편의 TV물과 단편 다큐를 발표했다.
세계영화사를 본함에 있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북 유럽의 대표적 인물이자 신의 침묵, 인간의 타락과 구원 그리고 신학적 고찰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형이상학적 문제를 다룰 수 있는 무한대의 매체로서의 영화의 가능성을 입증한 최초의 씨네아스트인 베리만은 자신을 절대적인 우상으로 추앙하는 우디 알렌으로부터 로버트 알트만, 스탠리 큐브릭, 에릭 로메르등과 같은 거장들과 프랑소와 오종, 올리비에 아싸이야,아톰 에고이안 등의 세기말에 등장한 신예들에 이르기까지 막강한 영향을 주었으며 2007년 스웨덴 파로섬의 자택에서 향년 89세를 일기로 자연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