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전통적의미의 리얼리즘과는 거리가 있지만 프랑스 리얼리스트 작가 계열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연출가 모리스 삐알라는 원래 화가로 출발하였다.
1925년 프랑스 오베르뉴주 픠 드 돔므에서 출생한 모리스 삐알라는 프랑스 파리의 미술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했으며 1945년 이후, 몇차례의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하지만 미술가로써는 그다지 큰 주목을 받지 못하였던 그는 어느날 미술이라는 작업에 격심한 회의를 느끼고 자신의 작품 모두를 불살라버린 후, 연극계로 투신하였으며 1950년대 말까지 배우와 조연출로 프랑스 연극계에서 활동했다.
1960년 프랑스 방송계로 진출한 삐알라는 같은 해 만든 21분짜리 흑백 단편 다큐 [존재하는 사랑 L'amour existe]과 이후에 발표한 TV용 영화로 서서히 프랑스 영화계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으며 1969년 프랑수와 뜨뤼포가 제작한, 자신의 장편 데뷔작 [벌거 벗은 어린 시절 L'enfance nue]을 발표하고 프랑스 장 비고상을 수상했으며 이때 그의 나이 44세 였다.
1972년 [우리는 함께 늙어 가지 않을 것이다 Nous ne vieillirons pas ensemble]를 비롯하여 [벌려진 입 La gueule ouverte (74)] [먼저 대학시험에 합격하라 Passe ton bac d'abord (79)]등 누벨바그와 장 르느와르 작품의 경계에선 70년대 작품을 발표하였으며 1980년 자신의 자전적 요소를 결합 시킨 이자벨 위페르, 제라르 드빠르디유 주연의 [룰루 Loulou]를 연출했다.
1985년 다큐스타일에 느와르 풍의 분위기를 가미한 소피 마르소 주연의 크라임 스릴러 [폴리스]를 연출한 삐알라는 1987년 자신의 대표작이자 깐느 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인 [사탄의 태양 아래서 Sous le soleil de Satan]를 발표했으며 이후, [반 고호 Van Gogh (91)] [르 가르슈 Le garçu (95)]등의 후기 대표작을 내놓았다.
평론가들로 부터 종종 미국의 독립 영화 작가 존 카사베츠와 비교되곤 했던 모리스 삐알라는 35년의 영화인생속에서 총 열편의 장편을 발표하고 프랑스 영화계에 독보적인 자신의 위치를 고수한 작가로 2003년 프랑스 파리에서 신장 쇠약으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