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9년 미국 캘리포니아 라 카나다출생으로 일찌기 기계다루는 재주가 남달랐던 플레밍은 자동차 레이서로 활동하며 정비공으로 일하다 캐나다 출신의 헐리우드 감독 알란 드완을 만나게 되면서 헐리우드로 진출할 기회를 얻었다.
알란 드완에 의해 촬영부 스탶으로 일하게된 플레밍은 곧 촬영감독으로 명성을 얻게되었으며 더글라스 페어뱅크스 D.W. 그리피스와 같은 헐리우드의 전설적인 인물들과 같이 영화작업을 하였다.
1919년 더글라스 페어벵크스 주연의 [When the Clouds Roll by]로 데뷔한 플레밍은 이후, 무성영화시대의 수많은 액션물을 연출하며 남자배우들의 감독이라고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1932년 MGM과 계약한 이후, 조지 쿠커와 함께 MGM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부상했다.
1939년 자신의 대표작이자 현대에 이르러서도 필견의 클래식으로 꼽히는 영화사에 길이 남을 두편의 걸작 [오즈의 마법사]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발표하였다. 원래 그의 라이벌인 조지 쿠커가 연출을 맡았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거물 제작자 데이빗 셀즈닉의 지나친 간섭으로 인해 쿠커가 도중하차 하게되어 플레밍의 몫으로 돌아온것이다.
결국 플레밍의 손에 의해 완성된 클라크 게이블, 비비안 리 주연의 대하 서사극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엄청난 흥행수익을 거둬들였으며 이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비롯한 8개부문을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다.
1948년 잉그릿드 버그만이 타이틀롤을 맡은 역사극 [잔다르크]를 완성한 플레밍은 이듬해 아리조나주에서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