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소쿠로프 그리고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와 더불어 1세대 러시아 영화세대로 꼽히는 비탈리 카네브스키는 1935년 소련 스찬 (현 러시아)출생으로 본명은 Vitali Yevgenyevich Kanevsky 이다.
1960년 모스크바 국립 영화학교에 입학하였으나 1966년 강간 혐의로 수감되어 6년간을 복역하고 1977년 41세의 나이가 되어서 비로서 영화학교를 졸업하였으며 1977년 [네번째 비밀] 과 1981년 [시골 이야기 Derevenskaya istoriya]등 두편의 단편영화를 발표했다.
하지만 그가 발표한 두편의 단편은 모두 평단으로 부터 심한 혹평을 받았고 결국 카네브스키는 사상성과 작품성을 이유로 러시아 영화계에서 배척당한채 실업자의 상태로 우울한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이토록 암울했던 세월속에서도 영화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은 카네브스키는 결국 자신의 유년기를 연상케 하는 시나리오를 만나게 되고 1989년 이를 영화화한 자신의 대표작이자 서방세계에 이름을 알린 계기가 된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 Zamri, umri, voskresni!]를 발표하였으며 이 작품은 알란 파커에 의해 깐느 영화제에 소개되어 53세라는 고령의 나이의 카네브스키에게 깐느 영화제 황금 카메라상을 안겨주었다.
로베르토 롯세리니의 [독일 0년], 프랑수와 뜨뤼포의 [400번의 구타]등과 더불어 유년기의 아픔을 다룬 걸작 영화의 계보에 오른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의 비평적 성공에 힘입어 프랑스의 재정적 지원을 얻게된 카네브스키는 1992년 두번째 장편인 [눈오는 날의 왈츠 Samostoyatelnaya zhizn/ An Independent Life]를 연출하고 깐느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1994년 역시 프랑스의 자본으로 완성된 다큐필름 [우리, 20세기의 아이들 Nous, les enfants du xxème siècle]을 발표, 소련 연방의 해체후 러시아 레닌그라드의 사회상을 현실적인 시각으로 그려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