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프랑스 북부 출생으로 나폴레옹 전쟁 당시 사탕수수 농장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루이 말은 소르본느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다 프랑스 국립 영화학교 IDHEC로 진학하여 영화를 전공했다.
졸업 후, 1950년대 로베르 브레송의 조감독으로 활동하던 그는 자끄 이브 꼬스토에게 고용되어 그의 다큐필름을 촬영함과 동시에 공동으로 연출작업을 했고 이때 만든 다큐필름[침묵의 세계
Le monde du silence]는 깐느 영화제 황금 종려상과 아카데미 최우수 다큐멘터리 상을 수상했으며 1958년 잔느 모로, 모리스 로네 주연의 크라임 스릴러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Ascenseur pour l'échafaud]로 장편 데뷔했다.
데뷔작 [사형대의 엘리베이터]는 비평가들과 일반 관객들로 부터 찬사를 받으며 큰 성공을 거두었고 루이 말은 같은 해 자신의 두번째 작품인 [연인들
Amants, Les]로 베니스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지만 윤리적 관습을 거스른 파격적인 내용과 노골적인 성묘사로 인해 논란에 휩싸이며 미국을 비롯한 몇몇 국가에서는 외설로 판단되어 상영이 금지되기도 하였다.
프랑스의 누벨바그 작가들과 동시대의 영화세대 이면서도 그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작품세계를 추구해온 그는 70년대 후반 미국으로 이주하여 1978년, 80년대 미국의 아이돌 스타 브룩 쉴즈의 아역연기로 화제를 모았던 [프리티 베이비]를 연출했으며 1980년 수잔 서랜든과 버트 랭카스타 주연의 [아틀란틱 시티]를 발표하고 그해 베니스 영화제 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이후, [앙드레와의 저녁식사 My Dinner with Andre (81)] [Crackers (84)] [알라모 베이 (85)]등의 미국영화를 연출한 루이 말은 1987년 조국 프랑스로 돌아가 연출한 [굿바이 칠드런 Au revoir les enfants] 으로 베니스 영화제 금사자상과 세자르 영화제 7개부문을 수상하며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았으며 1992년 아들의 연인과 불륜의 관계에 빠지는 초로의 남성을 다룬 파격적 소재의 영화 [데미지]로 다시 한번 논란을 일으켰다.
1980년 미국 배우 캔디스 버겐과 생애 두번째 결혼을 한 루이말은 1994년 안톤 체홉의 희곡을 각색한 영화 [Vanya on 42nd Street]를 마지막 작품으로 남기고 1995년 비버리힐즈의 자택에서 임파종으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