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이태리 에밀리-로마냐 리미니출생으로 이태리 네오리얼리즘의 계보속 인물임에도 가장 독특한 작품세계를 정립한 인물로 평가받는 펠리니는 청년시절 그의 남동생과 함께 뭇솔리니 집권시절 파시스트의 청년당인 Avanguardista에 가입했었다.
1939년 로마로 이주한 그는 풍자전문 주간지 Marc’Aurelio에 입사하여 캐리커쳐를 그리고 기사를 썼고 이때 이태리의 유명 코믹배우이자 연출가인 Aldo Fabrizi 를 만났으며 이후, 라디오를 비롯한 여러매체에서 그를 보조하며 작업했다.
1940년대 초 로베르토 롯셀리니를 알게된 펠리니는 그의 휘하에서 대본을 쓰기시작했으며 1942년 여배우 줄리에타 마시나를 만나 이듬해인 1953년 그녀와 결혼했다. 1952년 자신의 아내인 줄리에타 마시나를 출연시킨 로맨틱 코미디 [백인 우두머리 Sceicco bianco, Lo ]로 공식적인 데뷔를 마친 펠리니는 1954년 줄리에타 마시나와 안소니 퀸 주연의 [길 Strada, La]을 연출하고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했다.
특히 제르소미나역을 연기한 줄리에타 마시나를 은막의 급스타로 부상시킨 이 작품은 현재까지 이태리 영화음악의 대부 니노 로타의 애절한 오리지널 스코어와 함께 전세계 영화팬들의 심금을 울린 고전으로 남아있으며 이후, 펠리니는 [카리비아의 밤 Notti di Cabiria, Le(56)] [달콤한 인생 Dolce vita, La(60)] [8½ (63)]등의 주옥같은 자신의 대표작을 발표했고 줄리에타 마시나 주연의 [카리비아의 밤]과 이태리의 대배우 마르첼로 마스토얀니를 자신의 페르소나로 작품속에 투영시킨 [8½ ]으로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상을 60년작 [달콤한 인생]으로는 깐느 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하며 자신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1965년 줄리에타 마시나 주연의 [영혼의 줄리에타 Giulietta degli spiriti]를 연출한 펠리니는 70년대 들어 [펠리니의 로마 (72)] [아마코드 Amarcord (73)] [카사노바 Casanova di Federico Fellini, Il (76)]와 같은 자신의 후기 작품을 연출했으며 73년작 [아마코드]로 또 다시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했다.
우디알렌, 데이빗 린치, 데이빗 크로넨버그, 스탠리 큐브릭, 마틴 스콜세지,팀 버튼, 페드로 알모도바르,테리길리엄 그리고 유고의 에밀 쿠스트리차에 이르기까지 20세기를 대표하는 현대의 거장들에게 영화적 영감을 안겨준 이태리의 천재감독 펠리니는 1990년작 로베르토 베니니 주연의 코믹 무비 [달의 목소리 Voce della luna, La ]를 마지막 작품으로 남기고 1993년 10월 이태리 로마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으며 생을 마감하기 6개월전 미국 아카데미 위원회로부터 자신의 생애 마지막 트로피가 된 명예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