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린 듯한 연기력으로 뉴로시스 캐릭터를 자유자재로 표현해내는 헐리우드 최고의 성격파 배우 잭니콜슨은 1937년 미국 뉴욕의 맨하탄 출생으로 본명은 John Joseph "Jack" Nicholson 이다.
쇼걸출신의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니콜슨은 어린시절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할머니손에 키워졌으며 할머니를 어머니로 자신의 생모를 큰 누나로 알고 자랐다. 고교를 졸업하고 헐리우드로 이주한 그는 당시 MGM에 속해있던 애니메이션계의 전설인 한나-바바라 프로덕션에 메신저 보이로 입사하였다. 이때 그의 예술적 재능을 간파한 윌리엄 한나 와 조셉 바바라로 부터 본격적인 애니메이터가 될것을 권유 받았으나 이미 연기에 뜻을 두고 있던 니콜슨은 그들의 제안을 단호히 거절했다.
1958년 저예산의 스릴러 무비 [The Cry Baby Killer]에 주연을 연기하며 데뷔한 그는 1960년대 들어서며 로저 코만의 휘하에서 로저 코만이 연출하고 제작한 다수의 영화에 출연하였으며 비록 크레딧에 오르진 않았지만 로저 코만이 연출한 1963년작 호러무비 [더 테러]의 연출작업에 프란시스 코폴라와 함께 참가하였다.
몬트 헬만 감독이 연출한 두편의 컬트 클래식 웨스턴 [Ride in the Whirlwind (65)]와 [The Shooting (67)]에 출연한 니콜슨은 1969년 뉴 아메리칸 시네마의 대표작이자 자신의 초기 대표작 [이지 라이더]의 조지 핸슨 역을 연기하고 미국의 젊은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며 처음으로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다.
뉴 아메리칸 시네마 계열의 작품인 밥 라펠슨의 [파이브 이지 피시즈 Five Easy Pieces (70)]으로 자신의 두번째 아카데미 노미네이트이자 첫번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니콜슨은 이후, 1971년 코믹 드라마 [Drive, He Said]를 통해 연출가로 데뷔했으며 핼 애쉬비의 [마지막 지령 The Last Detail (73)] 과 미국영화사상 가장 뛰어난 완성도를 가진 느와르 필름으로 평가 받는 로만 폴란스키의 [차이나타운 (74)] 그리고 밀로스 포먼의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 (75)]를 통하여 3회 연속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 오르는 진기록을 수립하는 기염을 토했고 결국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에서 보여준 걸출한 연기력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연출데뷔작인 [Drive, He Said (71)]로 깐느영화제 그랑프이 후보에 오른바 있는 니콜슨은 1978년 자신의 두번째 연출작인 코믹 웨스턴 [바람둥이 길들이기 Goin' South]를 발표했다.
1980년 호러무비의 영원한 클래식이자 마스터피스로 꼽히는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에 출연하며 광기를 번뜩이는 호연으로 평단의 호평을 받은 니콜슨은 1981년 밥 라펠슨의 대표작인 크라임 스릴러 [포스트맨은 벨을 누른다 The Postman Always Rings Twice]에서 보여준 여배우 제시카 랭과의 격렬한 정사씬으로 세계적인 화제를 모았으며 1983년 셜리 멕클레인, 데브라 윙거등과 공연한 [애정의 조건]에서 퇴역 우주비행사를 연기하고 자신의 두번째 오스카상인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자신의 오랜 연인인 안젤리카 휴스턴의 아버지 존 휴스턴이 연출한[프리찌스 오너 (85)]를 비롯하여 [제 2의 연인 (마이크 니콜스 86)][이스트윅의 마녀들(조지 밀러 87) [아이언 위즈 (헥토르 바벤코 87)] [배트맨 Batman (팀 버튼89)]등의 80년대 작품에 출연한 니콜슨은 특히 89년 인기 코믹스를 극화한 [배트맨]에서 악당 조커로 분하며 보여준 천부적인 연기로 평단과 관객의 아낌없는 갈채를 받으며 헐리우드 배우의 상징적인 존재로 부상했다.
1990년, 자신의 대표작 중 하나인 [차이나타운]의 속편에 해당하는 크라임 스릴러 [불륜의 반항아 The Two Jakes]를 연출한 니콜슨은 1992년 밥 라펠슨의 [맨 트러블]에서 보여준 연기로 그해 최악의 배우 후보에 오르는, 자신이 배우로써 이뤄온 업적에 반하는 불명예를 얻기도 했으나 같은해 출연한 [어 퓨 굿 맨 (로브 라이너)]의 극단적인 쇼비니스트이자 독선적인 해병대 사령관역으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며 헐리우드의 손꼽히는 실력파 연기자로서의 명예를 회복했다.
1997년 제임스 L. 브룩스의 [이 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에서 냉소적이고 강박증에 빠진 소설가 멜빈 유달을 연기하고 상대배우인 여배우 헬렌 헌트와 나란히 아카데미 남.녀 주연상을 수상하며 생애 세번째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쥐었으며 [써스펙트 The Pledge (숀 펜 01)] [어바웃 슈미트 About Schmidt (알렉산더 페인 02) ] [성질 죽이기 Anger Management (피터 시갈 03)] [사랑할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Something's Gotta Give (낸시 마이어스 03) ] [디파티드 The Departed (마틴 스콜세지 06)] [버킷 리스트 The Bucket List (로브 라이너 07)]등의 2000년대 작품에 출연했다.
2002년 알렉산더 페인의 [성질 죽이기]로 노미네이트 된 것까지 총 12회에 걸쳐 오스카 연기상후보에 올라 3차례의 수상경력을 가진 그는 이 분야에서 두번째이며 남자 배우로는 최다 수상자가 되었다.
탁월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한 명성관 달리 개인적인 사생활 면에서는 방대한 여성편력을 가진 난봉꾼으로 알려진 그는 전해진 바에 의하면 2,000 여명의 여성과 섹스를 했으며 정식 결혼은 한차례뿐이었지만 모두 5명의 여성에게서 여섯 자녀를 낳았고 여배우 안젤리카 휴스톤과는 1973년 이후 16년동안 연인관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