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벨바그 디렉터들의 영향하에 출발하여 포스트 누벨바그의 출발을 알리는 인물이 된 장 외스타슈는 1938년 프랑스의 페삭출생으로 노동자 계층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영화에 대한 지식 대부분을 독학으로 습득한 후, 철도 노무자 시절 영화를 시작한 외스타슈는 비록 누벨바그 작가들의 도움으로 중.단편 영화연출을 시작하였으며 이 중 대부분은 자신의 고향 페삭을 배경으로 한 완성도가 뛰어난 수작들이었다.
평소 자신의 영화적 지향점은 대부분 뤼미에르 형제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해왔으며 이는 페삭 지방의 연례 행사를 다룬 시네마 베리떼 스타일의 [페삭의 아가씨들 La rosière de Pessac] 에 잘나타있고 이 작품은 후에 외스타슈 자신의 손에 의해 블로우 업 버전으로 리메이크 되었다.
1973년 외스타슈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자신의 데뷔작이자 대표작인 [엄마와 창녀 La maman et la putain]로 깐느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그는 1974년 두번째 장편 [작은 연인들 Mes petites amoureuses]을 발표했으나 자신의 의도한 대로 데뷔작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로 완성한 이 작품은 개봉당시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1977년 한 카페의 여자 화장실을 훔쳐보는 이야기로 구성되어 관음증과 강박관념을 다룬 [더러운 이야기 Une sale histoire] 다시 한번 논란의 주인공이 되었으며 이 작품은 애석하게도 외스타슈의 마지막 장편 연출작이 되었다.
평소 신격쇠약에 시달릴 정도로 예민했던 외스타슈는 한때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으며 결국 1981년 교통사고로 장애를 얻은 후, 자신의 아파트에서 권총으로 자신의 생을 스스로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