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프랑스 뽕샤또출생으로 프랑스 영화사상 최고의 로맨티스트중 한 명으로 꼽히는 드미는 누벨바그와 동일한 시기에 출현하였으면서도 그들과는 다른 작품 스타일을 구축했으며 조르주 루키에의 영향으로1950년대 몇 차례의 단편을 발표하며 영화계에 입문한 이후, 1961년 아누크 에메가 동명의 카바레 싱어를 연기한 [롤라 Lola]로 장편 데뷔했다.
막스 오퓔스에게 헌정된 데뷔작 [롤라] 이후 자끄 드미 작품의 주된 테마는 노래와 춤이었으며 작품 성향으로는 동세대의 누벨 바그 작가군 중 프랑소와 띄뤼포와 가장 근접해 있었다. 1964년 자신의 출세작이자 세계 영화사상 가장 뛰어난 뮤지컬중 한편으로 꼽히는 [쉘부르의 우산 Les parapluies de Cherbourg]을 연출하고 깐느 영화제 황금 종려상을 수상했다.
1967년 자신의 대표작[쉘브루의 우산]으로 국제적 스타로 부상한 까뜨린느 드뉴브와 요절한 드뉴브의 친언니 프랑소와즈 돌레악을 캐스팅하고 자신의 아내인 누벨바그의 대모 아네스 바르다와 공동으로 연출한 뮤지컬 [로슈포트의 연인들 Les demoiselles de Rochefort]을 발표하였으며 1969년 헐리우드로 건너가 자신의 데뷔작 [롤라]의 속편에 해당하는 작품[모델 샵]을 완성했다.
이후, 일본의 여류 만화가 이케다 리요코(池田 理代子)의 베스트셀러 코믹스 [베르사이유의 장미]를 각색한 [Lady Oscar (79)]를 비롯하여 몇편의 뮤지컬을 연출하였으나 대부분 그가 연출한 초기작 3편의 수준에 이르지못한 범작에 그치고 말았으며 1982년 연출한 [도시의 방
Une chambre en ville]만이 비평가들로부터 약간의 관심을 받았다. 1988년 프랑스의 애니메이터 폴 그리모와 협업으로 완성한 애니메이션 [터닝 테이블 La table tournante]은 드미의 마지막 연출작이 되었으며1990년 프랑스 파리에서 뇌일혈(아네스 바르다가 2008년 연출한 그녀의 자전적 다큐 [아네스의 해변 Les plages d'Agnès]에 따르면 사망원인은 에이즈로 밝혀졌다)로 사망했다.
1962년 결혼한 아내 아네스 바르다와의 사이에서 1남 마띠유 드미를 두었으며 아들 마띠유는 배우로 활동하다 2011년 [아메리카노]라는 작품으로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감독으로 데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