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프랑스 되세브르 니오르 출생의 앙리 조르쥬 끌루조는 서스펜스 스릴러 장르에 있어 당대의 히치콕과 비견되는 프랑스 최고의 스릴러 연출가이다.
프랑스의 전형적인 중산층 가정에서 삼형제 중 맏으로 태어난 그는 대학에서 법률과 정치학을 전공한 후, 우익 보수진영의 정치인 밑에서 비서관으로 근무하다 작가로 전향하였으며 독일 베를린의 한 영화사에 취직한 이후, 영화 연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독일 체류 당시 프랑스 보다 앞선 독일의 촬영기술을 접한 그는 프랑스로 돌아와 시나리오 작가로 영화계에 입문한 뒤, 1942년 미스테리 스릴러 [21번가의 살인자Assassin habite... au 21, L']로 장편 데뷔했다.
1943년 두번째 작품으로 나찌의 자본이 투자된 느와르풍의 크라임 스릴러 [까마귀 Corbeau, Le]를 연출하였나 이는 각기 다른 이유로 나치와 프랑스 양쪽 진영의 반감을 샀으며 결국 상영금지작이 되었다. [까미귀]의 발표 이후, 혹독한 시련의 세월을 보내야만했던 끌루조에게 미국시장을 비롯한 국제무대에 명성을 얻게 해준 작품은 1953년 완성한 이브 몽땅 주연의 액션 어드벤처 스릴러 [공포의 보수 Salaire de la peur, Le]였다.
프랑스 작가 조르쥬 아르노의 동명 소설을 극화한 이 작품은 1953년 베를린 영화제와 깐느 영화제의 그랑프리를 동시에 석권하는 영예를 안았으며 완성된 지 2년 후, 미국 개봉되어 대중관객에게 큰 호응을 얻었을뿐 아니라 1977년 윌리엄 프리드킨에 의해 헐리우드 버전으로 리메이크 되기도 하였다.
1954년 프랑스의 명 배우 시몬느 시뇨레와 자신의 아내인 베라 끌루조가 주연한 미스테리 스릴러의 클래식인 [디아볼릭 Diaboliques, Les]을 발표하고 프렌치 히치콕이라는 닉네임을 얻은 그는 1956년 피카소에 관한 다큐필름 [피카소의 미스테리]와 여우 브리짓드 바르도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진실 Vérité, La (60)] 그리고[지옥 Enfer, L' (64)]등의 60년대 작품을 연출했으며 1968년작 [죄수 Prisonnière, La]를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생전의 히치콕이 영화화하기를 원했던 [디아볼릭]의 판권을 불과 몇시간의 차이로 먼저 사들인 일화로 유명했던 스릴러의 장인 앙리 조르쥬 끌루조는 1977년 프랑스 파리에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