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독일 뮌헨 출생의 베르너 헤어조그는 60년대 일어난 독일의 [뉴 저먼 시네마]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동세대의 작가군중 가장 독창적이며 괴이한 인물로 정평이 나있다.
종종 자신의 작품을 통해 불가능한 꿈을 가진 영웅이나 오지속에 고립된 천재적 인물들을 다뤄온 그는 어린시절역사와 문학 그리고 연극에 특히 관심이 많은 아이였다. 12세가 되던해 자신만큼이나 괴짜인 배우 클라우스 킨스키와 같은 아파트에 거주했던 그는 그 때부터 막연히 자신이 연출가가 될것이라는 예감을 하곤 했다고 한다.
뮌헨 대학을 중퇴한 헤어조그는 돌연 멕시코로 건너가 로데오 선수를 하기도 했으며 1960년대 초반엔 영화를 만들기위해 용접공으로 일했고 철공소에서 야간근무를 하며 모은 돈으로 자신의 첫 단편 영화 [헤라클레스 (62)]를 완성했다.
1968년 장편 데뷔작 [Lebenszeichen/ Signs of Life]베를린 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하며 자신의 존재를 알린 헤어조그는 1971년 발표한 다큐멘터리 [침묵과 어둠의 땅 Land des Schweigens und der Dunkelheit]으로 평단의 갈채를 받았으며 이듬해인 1972년 자신의 대표작인 [아귀레, 신의 분노 ]를 연출했다.
페루의 아마존 우림속 로케로 황금의 도시 엘도라도를 찾아나선 스페인 군대의 광기와 환상을 그린 이 작품 7년후 완성된 프란시스 코폴라의 베트남전 영화 [지옥의 묵시록]의 모티브가 되었다.
1979년 대선배인 무르나우의 표현주의 고딕호러[Nosferatu, eine Symphonie des Grauens]를 리메이크한 [노스페라투 Nosferatu: Phantom der Nacht]로 베를린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으며 [아귀레, 신의분노]를 연출한지 정확히 10년후인 1982년 다시 클라우스 킨스키와 아마존으로 날아간 헤어조그는 아마존에 오페라 하우스를 건설하려는 한 오페라광의 무모함을 그린 [위대한 핏츠카랄도 Fitzcarraldo ]를 연출하고 그해 깐느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다.
이후, 80년대와 90년대를 통과하며 극영화보단 다큐멘터리와 TV물에 주력해온 헤어조그는 1999년, 91년에 사망한 자신의 페르소나 클라우스 킨스키를 추모하는 다큐멘터리 [나의 친애 하는 적 -클라우스 킨스키]를 발표했으며 2005년 디스커버리의 지원으로 미국 알래스카에서 촬영한 다큐멘터리 [그리즐리 맨]으로 선댄스 영화제 특별상을 수상하며 지칠줄 모르는 노익장을 과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