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티 헬만, 잭 힐, 폴 바텔과 같은 B급 영화의 대표적 씨네아스트를 길러냈을 뿐 아니라 이제 막 걸음마를 걷기 시작한 햇병아리 코폴라, 조나단 드미. 조 단테와 같은 거장들에게 자양분을 제공한 미국 B급 무비의 제왕 로저 코만은 1926년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엔지니어인 아버지 윌리엄 코만과 어머니 앤 코만 사이에서 출생했다.
스탠포드 대학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한 코만은 졸업 후, 바로 시나리오 작가로 영화계에 투신하였으나 제작진과의 마찰로 인해 자신이 직접 영화를 만들것을 결심하고 AIP(American Internatiol Pictures)에 합류, 프로듀서겸 연출가로 변신하였다.
1955년 저예산으로 B급 영화의 표본이라 할수 있는 [스웜프 우먼 Swamp Women]으로 공식데뷔한 코만은 짧은 기간내에 다수의 영화를 연출하고 프로듀싱하며 빠른 속도로 성장하였고 1960년 애드가 알란포우의 소설을 각색한 호러물 [어셔가의 몰락 House of Usher]으로 성공을 거둔이후, 계속해서 알란포우의 원작에 기초한 작품들을 발표하며 60년대 미국 B급 영화 시장을 장악해 나갔다.
웨스턴과 갱스터 필름, 호러, SF에서 소프트코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익스플로테이션 필름으로 메이저 필름의 흐름을 예견하면서 혹은 모방해가며 자신만의 왕국을 구축하던 그는 자신의 한살 아래 동생인 진 코만과 함께 영화를 제작하기도 하였으며 1970년대 로저 코만 사단의 요람이라 할수 있는 뉴 월드 픽처스를 설립하고 이후, 재능있는 신인 연출가들에게 과감히 기회를 안겨주었다.
또한 연출가뿐 아니라 데니스 호퍼, 로버트 드 니로, 잭 니콜슨 그리고 피터 폰다에서 코폴라의 여동생인 탈리아 샤이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배우들에게 메이저 스타로 성장 할수 있었던 토대를 마련해 주기도 하였던 코만은 1970년 자신의 대표작이라 할수 있는 셜리 윈터스 주연의 크라임 무비 [블러디 마마 Bloody Mama]를 연출한 이후로는 연출보다 제작쪽에 주력했다.
1983년 소규모의 영화사에서 미국내 최고 규모의 인디펜던트 필름 메이커로 성장한 자신의 뉴월드 픽처스를 매각하고 콩코드- 뉴호라이즌 사를 설립한 코만은 이후, 극장 개봉 영화뿐 아니라, 비디오물과 케이블 TV용 영화를 양산하면서 거액의 수익을 창출했을 뿐 아니라 이와 같은 경력을 [나는 어떻게 헐리우드에서 백편의 영화를 만들고 한푼도 잃지 않았는가? How I Made a Hundred Movies in Hollywood and Never Lost a Dime] 라는 제목의 자서전에 담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