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중국 광저우 출생으로 1951년 가족과 함께 홍콩으로 이주했다. 어린시절 빈민가에서 우울한 유년을 보낸 그는 영화광인 어머니 덕에 볼수 있었던 프랑스의 누벨바그 작품과 헐리우드 뮤지컬이 유일한 낙이었다.
청년이된 오 우삼은 혼자 독학으로 영화를 공부하기 시작했으며 8mm와 16mm필름으로 단편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1969년 케세이 필름에 입사한뒤 곧 바로 쇼브라더스로 옮겨간 그는 홍콩 무협물의 거장
장철감독의 조감독으로 활동하며 그에게 연출기법을 사사받았다.
1974년 성룡이 무술지도를 맡은 액션 영화 [철한유정]으로 장편데뷔하였으나 지나친 폭력묘사로 인해 상영금지 조치를 받았으며 이후, 쇼브라더스를 매입한 골든 하베스트에서 10여년간 삼류 코미디 영화를 연출하며 긴 슬럼프에 빠지게 되었다.
이런 기나긴 슬럼프에 빠진 그를 구출한건 제작자 겸 감독인 서극이다. 1986년 서극의 제안으로 홍콩 느와르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홍콩영화사상 가장 유명한 액션 느와르 [영웅본색]을 연출하고 홍콩 영화계를 떠들석하게 하였다. 이후 1987년 [영웅본색 2]를 연출하고 전편에 못지 않은 관객들의 갈채를 받은 그는 1989년 홍콩 느와르의 정점이라 할수 있는 그의 대표작 [첩혈쌍웅]을 완성했다.
샘 페킨파에서, 셀지오 레오네 하워드 혹스 그리고 프랑스의 장 피에르 멜빌에 이르기까지 그에게 영향을 준 액션 거장들에 대한 오마쥬이자 폭력미학의 절정이었던 이 작품은 오우삼의 존재를 헐리우드에 알리게 해주었다.
1992년 주윤발의 하드보일드 액션 [첩혈속집]을 맞막으로 홍콩 영화계를 떠나 헐리우드로 진출한 오우삼은 1993년 그의 미국 시장에서의 가능성을 테스트 받는 작품으로 장 끌로드 반담의 [하드 타겟]을 완성했다. 비록 흥행결과는 신통치 않았으나 그의 장기인 미학적 폭력 시퀀스로 가능성을 충분히 인정 받은 그는 이어 [브로큰 애로우] [페이스 오프]등의 액션 대작을 연출했으며 97년 연출한 [페이스 오프]는 그 해 여름 미국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2000년 팬들의 비상한 관심속에 그해, 헐리우드 최고의 블럭버스터인 [미션 임파서블 2]를 연출하였다. 전세계 와이드 릴리즈로 인해 흥행결과는 무난했으나 작품면 에선 그 만의 스타일을 도저히 찾을 수 없었고 그의 팬들을 실망시키기에 이르렀으며 2002년 발표한 니콜라스 케이지의 전쟁영화 [윈드토커]는 기대이하의 범작으로 끝났다.
헐리우드에서의 실패이후, 중국으로 돌아온 오우삼은 중국 역사상 가장 장대한 전투로 기록된 [적벽대전]의 영화화 작업에 착수했으며 아시아 영화사상 초유의 제작비를 들여 2008년과 2009년에 걸쳐 2부작으로 완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