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Pier Paolo Pasolini

이탈리아/포스트 네오리얼리즘

by 켄2 2008. 9. 28. 10:43

본문

사용자 삽입 이미지



1922년 이태리 볼로냐 출생의 파졸리니는 이태리가 낳은 현대영화의 기린아로 시인이자, 철학가이며 혁신적인 언론인이자 화가였다. 그는 독특하고 특출난 재능으로 자신의 문화적 다능을 입증한 인물로 전통적으로 좌파성향이 강한 도시 볼로냐에서 장교인 아버지와 초등학교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아버지 카를로 알베르토는 뭇솔리니의 목숨을 구한 일화로 유명해진 파시스트였다.

7세때 부터 시를 쓰기 시작한 파졸리니는 1939년 볼로냐대학의 문학대학으로 입학하였으며 1941년 자신의 첫 시집을 발간하였다. 이후 소설과 에세이 그리고 시나리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포맷의 문학작품을 발표한 파졸리니는 1955년 시나리오 작가로 이태리 영화계에 입문하였으며 1960년 배우로 데뷔한 후, 1961년 자신의 첫 장편인 [Accattone]를 발표했다.

로마 슬럼가 포주의 일상을 폭력적으로 묘사한 파졸리니의 데뷔작은 자신의 소설을 각색한 것으로 이태리 영화계에 파란을 몰고왔으며 파졸리니는 이후,[Mamma Roma (62)] [마태복음 Vangelo secondo Matteo, Il (65)] [매와 참새 Uccellacci e uccellini (66)] [오이디푸스 왕 Edipo re (67)]등의 작품들을 발표하고 또 다른 논란을 야기함과 동시에 깐느, 베니스등의 국제 영화제를 통하여 세계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1971년 이태리 르네상스시대의 작가 보카치오의 소설을 영화화한 [데카메론 Decameron, Il]으로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했으며 1972년 영국작가 초오서의 작품을 스크린으로 옮긴 [켄터베리 이야기 Racconti di Canterbury, Il]로 베를린 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1974년 아랍민족의 설화 [아라비안 나이트]를 자신만의 시선으로 재해석한 [아라비안 나이트 Fiore delle mille e una notte, Il]로 깐느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하였으며 1975년 자신의 마지막 작품이자 상상을 뛰어넘는 가학적이고 충격적인 묘사로 인해 세계 여러나라에서 상영금지 리스트에 오른 [살로 소돔의 120일 Salò o le 120 giornate di Sodoma]을 통해 파시즘의 광기와 염세주의에 빠진 자신의 가치관을 표현하였다.

6, 70년대 자신의 작품을 통해 극단적인 막시즘과 파시즘에 대한 혐오 그리고 노골적인 성적 묘사를 거침없이 드러내며 항상 이태리 영화계를 논쟁의 격전지로 몰아넣은 안티-파시스트이자 공산주의자이며 시대적 이단아 였던 파졸리니는 마지막 작품 [Salò o le 120 giornate di Sodoma]을 발표한 직후,1975년 11월 이태리 로마 근교의 해변에서 자신의 동성애 상대자인 17세의 청년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했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