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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토 브라스 Tinto Brass

이탈리아

by 켄2 2008. 8. 25. 0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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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이태리 롬바르디 밀란 출생의 틴토 브라스는 "마에스트로"라는 닉네임을 가진 이태리 에로티시즘 무비의 거장이다.

본명은 Giovanni Tinto Brass로 이태리의 유명한 화가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할아버지의 예술적 재능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그는 캔버스 대신 스크린에 자신의 예술적 감각을 표현하고자 했다. 50년대말 이태리 네오리얼리즘의 거장 로베르토 롯셀리니의 조감독으로 영화계에 입문한 그는 1963년 [Chi lavora è perduto]으로 데뷔했다.

데뷔이후, [Nerosubianco (69)] [Urlo, L' (70)]등의 아방가르드 아트필름을 연출한 그는 1976년 연출한,소프트코어수준의 섹스플로테이션무비 [살롱 키티]의 성공으로 이태리의 에로영화를 대표하는 인물로 부상하게되었다.

영화 [살롱키티] 이후, 펜트하우스의 오너인 Bob Guccione로부터 대형자본이 투자된 스펙타클 성애영화 [칼리큘라]의 연출을 의뢰받았다. 비록 완성단계에서 제작자인 Bob Guccione와의 심각한 의견대립으로 틴토 브라스는 해고되었지만 완성후, 전세계적인 심의논쟁에 휩싸인 문제작 [칼리큘라]는 미국을 비롯한 세계각국에서 괄목할 수준의 성공을 거두며 틴토 브라스의 명성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80년대 들어 더욱 노골적인 에로티시즘으로 채워진 소프트코어 필름을 발표하기 시작한 브라스는 [열쇠 Chiave, La(83)] [미란다 (85)] [카프리의 깊은 밤 Capriccio(87)] [파프리카 Paprika (91)] [올 레이디스 두 잇 Così fan tutte (92)] [훔쳐보기 Uomo che guarda, L' (94)] [P.O.박스 Fermo posta Tinto Brass (95)] [모넬라(98)]등 특유의 미장센으로 완성된 작품을 발표하며 전세계 에로 영화팬들의 환호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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