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미국 뉴욕 알바니 출생으로 본명은 John Campbell McTiernan Jr. 이다. 오페라 가수였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줄리어드 음대로 진학하였지만 곧바로 방향을 선회 뉴욕의 SUNY와 AFI에서 영화를 전공했다. 졸업후, 광고계에 투신한 맥티어넌은 AFI에서 지원받은 기금으로 단편영화 연출을 시작했다. 1986년 자신의 장편 데뷔작인, 피어스 브로스넌 주연의 아주 독특한 분위기의 호러물[노매드Nomads]를 발표하고 깐느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다.
비록 수상은 못했지만 신인감독에게 주어지는 황금카메라상 후보에 오르며 비평가들의 찬사와 주목을 받았던 그는 깐느 영화제를 참관중이던 헐리우드의 거물 프로듀서
조엘 실버에게 픽업되는 행운을 얻었으며 1987년 아놀드 슈왈츠네거 주연의 SF액션 [프레데터 Predator (87)]를 연출하게 된다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적인 흥행몰이에 성공한 이 작품이후, 다시 조엘 실버와 손잡고 그의 대표작인 [다이하드 Die hard (88)]와 [붉은 10월 The hunt for Red October (90)]을 연이어 히트시키며 액션영화의 최고 장인으로 부상했다. 특히 정글(프레데터), 빌딩(다이하드), 잠수함(붉은10월)등 한정되고 폐쇄된 공간속에서 치밀하게 벌어지는 뛰어난 액션씬 연출은 그만의 장기로 평가되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그가 야심차게 기획했던 두편의 작품 [에덴의 마지막 날 Medicine (92)] 과 [라스트 액션 히어로 Last Action Hero (93)]는 무참한 실패작으로 그쳤고 그는
레니 할린에게 넘겼던 다이하드의 3번째 시리즈 연출을 기획한다. 하지만 선상에서 벌어지는 테러리스트와의 나홀로 분투기라는 소재가 앤드류 데이비스에 의해 [언더시즈]로 영화화 되자 [다이하드]의 기획은 난관에 부딪힌다. 결국 [사이먼 새즈]라는 각본을 사들여 1995년 완성한 [다이하드3
Die Hard: With a Vengeance]은 흥행엔 성공했지만 비평가들은 더 이상 맥티어넌의 편이 아니었다.
또한 99년과 2002년 연이어 노장
노만 주이슨 감독의 70대 히트작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
The Thomas Crown Affair (99)]와 [롤러볼 Rollerball (02)]을 리메이크 했지만 범작 수준이하의 흥행성적을 거두며 헐리우드에서 잊혀져가는 인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