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시적 리얼리즘(Poetic Realism) 이라는 스타일을 확립하고 프랑스 영화의 황금기를 주도한 자끄 베데는 원래 벨기에인으로 1988년 벨기에의 익셀지방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Jacques Léon Louis Frédérix 이다.
그의 나이 25살이 되던 해 연극배우의 꿈을 안고 파리로 이주한 페데는 연극 연출로 출발하여 프랑스의 고몽영화사와 계약한 이후, 1914년 조 연출을 거쳐 1916년 정식 연출가가 되었다. 1917년 군복무를 위해 다시 조국 벨기에로 돌아간 페데는 일차세계 대전이 끝나자 다시 프랑스로 건너가 영화 연출을 재개 했으며 1921년 피에르 브느와의 소설을 각색한 판타지 [L'Atlantide]를 발표하고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1928년 프랑스 무성영화 시대의 걸작으로 꼽히는 에밀 졸라 원작의 [떼레즈 라깽 Thérèse Raquin]을 발표하고 당대 프랑스 영화 연출가 중 가장 혁신적인 인물로 부상한 그는 1929년 미국 MGM사의 제안을 받고 헐리우드로 건너가 무성 영화 시대 최고의 여배우로 꼽히는 그레타 가르보 주연의 [키스]를 완성했으며 1931년 가르보와 다시 작업한 [안나 크리스티]를 연출했지만 헐리우드 시스템에 대한 환멸과 미국에서의 연출작업에 회의를 느끼고 1933년 다시 프랑스로 돌아왔다.
1928년 국적을 취득함으로써 제2의 조국이 된 프랑스에서 다시 연출활동을 시작한 페데는 1935년 시적 리얼리즘 스타일의 원형이 된 작품이자 자신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팬션 미모사 Pension Mimosas]와 자신의 필모그라피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꼽히는 걸작 [플랜더즈의 축제 La kermesse héroïque]를 연이어 발표하며 자신의 영화인생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하지만 17세기 스페인 지배하의 플랑드르(플랜더즈)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비록 페데에게 1936년 베니스 영화제 최우수 감독상의 영예와 비평적인 찬사를 안겨주었지만 일부 왜곡된 플랜더즈인의 묘사로 인해 플랜더즈 민족주의자들로 부터 거센 항의와 공격을 받기도 했다.
1930년대 말 이차대전의 전운이 유럽을 감돌 무렵 페데는 영국과 독일을 오가며 작품을 발표했지만 그다지 성공적인 평가를 받지 못하였고 나찌가 프랑스를 점령하자 연출활동에 많은 제한을 받은 그는 일신상의 안전과 자유로운 활동을 위해 스위스로 망명하였으며 여기서는 그는 자신의 마지막 작품이된 미스테리 드라마 [여인의 초상 Une femme disparaît]을 완성했다.
1944년,1917년 결혼한 이래 자신과 많은 작품을 함께 헤온 프랑스 파리 출생의 여배우 프랑소와즈 로사이와 자전적인 회고록 [Le Cinéma, notre métier]를 발간키도 한 그는 자신이 이룩한, 프랑스 영화사에 길이 남을 뛰어난 영화사적 업적을 뒤로한 채 1948년 스위스에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