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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커티즈 Michael Curtiz

클래식

by 켄2 2009. 1. 3.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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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50여편, 헐리우드에서 100여편 이렇게 일생동안 총 150여편의 영화를 연출한 헐리우드의 클래식 디렉터 마이클 커티즈는 1886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現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출생으로 Manó Kertész Kaminer 이다.

중산층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진 커티즈의 어린 시절의 기록은 정확히 남아있는것이 없고 일단 그는 마르코지 대학을 거쳐 헝가리 왕립 영화 예술 아카데미에서 영화수업을 받은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Mihály Kertész란 예명으로 배우 생활을 시작했으며 곧 바로 연출가로 전환, 극영화 연출을 시작했으나 그의 초창기 작품은 대부분 소실되어 이 또한 정확한 기록이 없다.

1913년 덴마크로 건너가 약 6개월가량 머물며 덴마크 영화감독 오거스트 블럼의 조감독으로 일했고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군으로 참전하였으며 종전 후인 1919년 헝가리의 영화산업이 국영화되자 헝가리를 떠나 비엔나에 정착하였다.

1922년 그의 초창기 주요작품 중 하나인 [소돔과 고모라]를 연출하였는데 이는 후에 [이스라엘의 달]이라는 제목으로 미국에 소개되었으며 이를 본 워너 브라더스의 잭 워너는 마이클 커티스를 자신의 스튜디오 워너 브라더스와 계약하게 하였다.

1926년 미국에 도착한 커티스는 1928년 완성된, 성서에 기초한 스펙타클 무비 [노아의 방주]의 흥행성공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으며 30년대 중반 연출한 [캡틴 블러드 (35)] [로빈 훗의 모험 The Adventures of Robin Hood (38)] 등의 작품으로 자신의 전성기를 열었다.

1942년 전세계 영화팬들에게 잊지못할 명장면을 남겨준 불후의 걸작, 잉그릿드 버그만, 험프리 보가트 주연의 [카사블랑카]와 미국의 전설적인 뮤지컬 작곡가이자 작가이며 배우인 조지 코핸의 전기를 다룬 제임스 캐그니 주연의 뮤지컬 [양키 두들 댄디  Yankee Doodle Dandy]등의 대표작을 연출하였며 1945년 제임스 M. 케인의 하드 보일드 소설을 각색한 40년대 필름 느와르의 최고작 [밀드레드 피어스 Mildred Pierce] 를 완성하였다.

1950년대 들어 헐리우드의 스튜디오 시스템이 붕괴되자 웨스턴 무비 [The Boy from Oklahoma]를 마지막으로 워너 브라더스를 떠나 프리랜서로 20세기 폭스와 파라마운트등에서 [The Egyptian (54)] [화이트 크리스마스 (54)] [The Helen Morgan Story (57)] [King Creole (58)] 등의 50년대 작품을 발표했으며 1961년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된 존 웨인 주연의 웨스턴 [코멘체로스 The Comancheros]를 남기고 이듬해인 1962년 헐리우드에서 암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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