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오 아르젠토와 더불어 이태리 지알로와 모던 호러등 고어장르에서 독보적인 영역을 확립해온 대표적 거장 루치오 풀치는 1927년 이태리 로마에서 태어났다.
대학시절 의학을 전공했던 그는 돌연 영화계로의 진출에 뜻을 두고 1950년대 이태리 영화계에 각본과 연출분야로 입문하여 시나리오를 쓰면서 스테노, 리카르도 프레다등의 이태리 감독의 조연출로 활동했다. 1959년 코미디 영화 [도적들 I ladri ]로 장편 데뷔한 푸치오는 뮤지컬, 웨스턴, 코미디등의 장르에서 숙련된 연출기량을 발휘하며 빠른 속도로 성장하였다.
1969년 처음으로 미스테리 스릴러물에 도전한 풀치오는 첫 스릴러물[Una sull'altra]으로 상당한 흥행성적을 거뒀으며 71년과 72년에 발표한 두편의 지알로 무비 [Una lucertola con la pelle di donna]와 [오리를 괴롭히지마라 Non si sevizia un paperino]를 흥행에서 크게 성공시키고 이태리 호러의 새로운 재능으로 부상했으나 영화의 잔혹성으로 인해 평단의 혹독한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후, 잠시나마 이태리 관계당국의 요주의 인물로 낙인 찍혔던 풀치는 한동안 고어장르에서 벗어나 어드벤처물과 스파게티 웨스턴 장르를 연출했으며 1977년 [7개의 검은 노트/사이킥 Sette note in nero]를 연출하고 다시 호러불로 복귀하였다.
1979년, 이태리에서 [좀비]라는 제목으로 개봉된 조지 로메로 작 [이블 헌터 Dawn of the Dead]의 이름만 따온 속편 [좀비 2 Zombi 2]를 발표하고 해외 호러무비 팬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렸으며 1980년 미국의 대표적 호러작가 H.P.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에서 모티브를 따온 호러[시티 오브 리빙 데드 Paura nella città dei morti viventi]를 비롯하여 에드가 알란포우 원작의 [검은 고양이 Gatto nero (81)] 그리고 [비욘드 E tu vivrai nel terrore - L'aldilà (81)] [뉴욕 리퍼 Lo squartatore di New York (82)]등의 80년대 초반에 발표한 일련의 호러필름으로 다리오 아르젠토와 쌍벽을 이루는 스파게티 호러의 명장으로 부상했다.
수위높은 표현과 잔혹성으로 인해 유럽국가의 대부분은 그의 작품을 상영금지 시키거나 심의 과정에서 많은 분량을 삭제한 채 상영케하였으나 그럴수록 풀치의 호러물은 더욱 인기가 높아졌으며 [머더록 Murderock - uccide a passo di danza (84)] [애욕의 세실리아 Il miele del diavolo (86)] [애니그마 Aenigma (87)] [앨리스가 거울을 깼을때 Quando Alice ruppe lo specchio (88)] [소돔의 유령 Il fantasma di Sodoma (88)]등의 80년대 후반 작품을 발표했다
80년대 중반을 정점으로 호러작가로서의 인기에 하강 곡선을 그린 풀치는 이후, 이태리 방송계에서 몇편의 TV용 호러물을 연출했으며 1990년대 중반 현역에서 은퇴한 후, 1996년 로마의 자택에서 사망하였는데 당시, 이태리에선 당뇨에 의한 병사인지 자살인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