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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미 주조(伊丹 十三) Itami Juzo

일본

by 켄2 2008. 12. 5.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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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자와 아끼라 이후 일본 최고의 감독으로 평가 받는 이타미 주조는 1933년 일본 쿄토에서 영화감독인 이타미 만사쿠의 아들로 태어났다.

고교졸업후, 오사카 대학에 응시했다가 낙방한 주조는 이후, 상업 디자이너, TV 리포터 ,잡지 편집인, 에세이스트등 다양한 직업을 거쳐 도쿄의 무대예술학원에서 연기 수업을 받고 1959년 다이에이(大映)영화사에 입사,1960년 이타미 이치조라는 예명으로 영화계에 배우로 데뷔했으며 같은 해 조감독 카와키타 카즈코와 결혼했다.

1963년 니콜라스 레이 감독의 대하 서사극 [북경의 55일]에 출연하면서 화제를 모은 그는 이후, 60년대 일본 뉴웨이브 감독들의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여 발군의 연기력을 발휘했으며 1969년 다시 이타미 주조로 개명하고 방송계와 영화계를 오가며 활발히 활동했다.

한때 유럽 로케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에세이 집 [유럽 실증일기ヨーロッパ退屈日記]를 쓰고 좋은 반응을 얻은 그는 1984년 일본의 장례식 과정을 코믹터치로 섬세하게 그려낸 [장례식お葬式]을 통하여 51세라는 늦은 나이에 연출가로 데뷔하였으며 일본 아카데미 영화제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하는 등 일본 언론과 비평가들로 부터 찬사일색의 호평을 받았다.

1985년 담포포(민들레)라는 이름의 라면집을 중심으로 라면가게들 사이의 경쟁을 웨스턴 무비 스타일로 그려낸 누들 웨스턴 [담포포 タンポポ]를 발표하고 큰 흥행성공을 거두었으며 [마루사의 여자 マルサの女(87)] [민보의 여자 ミンボーの女(92)] [중환자 大病人(93)] [조용한 생활 (95)]등 풍부한 리얼리티에 기반한 섬세한 묘사로 일본사회의 금기사항을 도발적이지만 코믹하게 그려낸 일련의 작품들을 흥행성공 시키고 [이타미 스타일]이라는 신조어를 낳으며 일본내 최고의 흥행감독으로 자리잡았다.

한때 자신의 작품 [민보의 여자]의 내용에 불만을 품은 일본 야쿠자 야마구치조 조직원 5인조에게 심한 린치를 당한 후, [나는 꺾이지 않는다. 영화로 자유를 가로지를 것이다]라고 선언했던 유명한 일화를 남기기도 했으며 1997년 마지막 작품이 된 [마루타이의 여자  マルタイの女]를 발표하고 그해 12월 언론이 폭로한 자신의 불륜의혹에 대해 죽음으로써 결백을 증명하겠다며 자신의 프로덕션이 있는 맨션 건물에서 투신 자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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