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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파간다의 영웅들 -Dossier Vol. 1

Dossier

by 켄2 2009. 7. 22.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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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8월1일 자정을 기해 미국 뉴욕의 케이블 방송사 MTV가 첫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24시간 음악프로그램만을 방영하는 MTV의 개국은 미국의 수많은 팝 뮤직 애호가들에겐 그야말로 혁명과도 같은 일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의 전환을 불러온 MTV가 미국 대중문화에 가장 변화를 가져다 준 것은  바로 뮤직 비디오였습니다.

MTV를 통하여 수많은 아티스트들의 뮤직비디오가 전파를 탔으며 이는 정말 빠른 속도로 전세계로 퍼져나갔고 지구촌의 모든 젊은이들은 현란하고 감각적인 비쥬얼의 뮤직비디오에 열광하기 시작했습니다.

전세계를 흥분시킨 뮤직비디오의 열기는 더욱 많은 뮤직비디오 연출가의 출현을 야기했고 본격적인 전문 스튜디오 시대를 도래케햇으며 이러한 분위기속에 1986년 스티브 골린은 뮤직비디오 전문 프로덕션 프로파간다 필름즈를 설립하게 됩니다.

한편으로 항상 새로운 재능을 찾는데 혈안이 되어있던 헐리우드 스튜디오의 프로듀서들 또한 뮤직비디오의 감각적인 비쥬얼에 매료되었으며 MTV를 통해 새로운 인재를 모색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수요는 많은 신예 연출가들의 헐리우드 진출기회를 열어주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초창기 MTV에서 헐리우드로 건너간 연출가들이 모두 성공을 거둔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성공한 작가보단 쓰라린 패배를 경험하고 본업으로 돌아간 연출가들의 수가 월등히 많았습니다 이는 두시간동안 관객을 객석에 잡아두기에는 3분의 짧은 러닝타임에 길들여져있던 작가들의 역량이 너무나 부족했기 때문이었고  거기에 첨단 디지털에 의존하던 작가들과는 달리 헐리우드는 여전히 아날로그 방식을 고수하고 있었던 이유가 더해진것입니다 이로써 비쥬얼로만 승부하고자 했던 프로듀서들의 계산은 보기 좋게 빗나갔던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90년대가 도래하면서 프로파간다가 배출한 작가들의 출현은 상황을 180도 전환시켜놓았습니다

특히 제일 먼저 성과를 거둔 데이빗 핀처의 출현은 헐리우드의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1. MTV의 총아. 강렬한 콘트라스트의 비쥬얼리스트 -데이빗 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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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파간다가 발굴한 최초의 재능 데이빗 핀처 그는 제일먼저 디스토피아적 우주관을 스위스 출신의 초현실주의 거장 H.R.기거의 힘을 빌어 스크린에 옮겨놓은 당대 최고의 비쥬얼리스트 리들리 스콧트와 베트남전에 대한 알레고리로 후속작을 연출한 블럭버스터 메이커 제임스 카메론의 뒤를 이어 [에일리언 3]의 연출가로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6천 3백만달러라는 거액의 예산을 들여 완성한 핀처의 데뷔작은 5천5맥만달러라는 흥행실적(북미)을 남기며 실패로 끝났고 데이빗 핀처는 다시 자신의 본업인 뮤직비디로로 귀환합니다

하지만 3년 후, 호러작가 앤드류 케빈 워커의 시나리오를 들고 헐리우드로 온 데이빗 핀처는 이란 출생의 천재 촬영감독 다리우스 콘쥐의 힘을 빌어 두번째 장편 [세븐]을 발표하고 전세계 젊은 영화학도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끌어내는데 성공하고 북미지역 1억과 해외 2억불을 합해 3억불, 무려 제작비 10배의 흥행실적을 거둬들이는 쾌거를 이뤄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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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리언 3의 촬영현장에서- 데이빗 핀처와 여전사 리플리역의 시고니 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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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 느와르의 마스터 피스 -세븐]


1999년 전작인 [세븐]과 [더 게임]에 이어 더욱더 어둠고 폐쇄된 공간으로 카메를 들이댄 핀처는 수많은 논쟁을 불러왔던 척 팔라니욱의 원작 소설을 각색한 [파이트 클럽]을 연출합니다  사회규범이라는 틀에 갇힌 남성들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에고속의 야성을 깨우고 이는 타인에 대한 폭력으로 이어진다는 파괴적인 논리를 담은 [파이트 클럽]은 원작과 마찬가지로 논쟁에 휘말리게 되지만 광적인 팬덤을 얻기도 했습니다.

연출을 거듭할수록 심화되는 어두운 작품세계의 핀처는 2001년 천재 배우 조디 포스터와 영화 [패닉 룸]의 연출에 들어갑니다.  2002년 완성된 [패닉 룸]은 핀처의 스릴러적 재능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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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파괴에 관한 니체적 관념-파이트클럽]

로 평가되었고 핀처는 2007년 자신의 대표작 [세븐]의 모티브가 되었던 "조디악 킬러"사건을 다룬 [조디악]을 발표합니다.

하지만 2005년 크랭크 인하여 2007년 완성된 스릴러 [조디악]은 [패닉 룸] 이후, 핀처의 신작을 기대하던 수많은 영화팬을 실망시킨 범작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2008년 마크 트웨인이 말한 "인간이 80세로 태어나 18세로 늙어간다면 무한한 행복을 누릴것이다" 구절에 힌트를 얻어 F.스콧 피츠베랄드가 쓴 단편 소설을 모티브로 하여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를 자신의 오랜 친구인 브래드 피트와의 작업으로 완성한 핀처는 자신의 필모그라피에 최초로 로맨스영화를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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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 핀처 최초의 멜로 드라마-벤자민 버튼의 사간은 거꾸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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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호주에서 온 헐리우드 용병 - 알렉스 프로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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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영화계에서 성장한 알렉스 프로야스는 요절한 브랜던 리의 유작 [크로우]로 미국시장에 진출했습니다.

영화의 완성 8일을 남겨놓고 주연배우의 사망사고로 인해 뜻하지 못한 난관에 봉착한 프로야스는 대본의 수정과 스크린 프로세스, 스턴트 더블로 가까스로 작품을 완성했고 이듬해 개봉된 [크로우]는 북미수익 5천만달러를 거둬들이며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성공을 이룹니다.

이어 1998년 발표한 [다크 시티]또한 광적인 컬트팬의 지지를 받으며 SF영화사의 수작으로 기록되었으며 프로야스는 2004년 대문호 아이작 아시모프의 단편 SF에서 영감을 얻은 자신의 첫 블럭버스터 [아이 로봇]의 메가폰을 쥐게 되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총 1억2천만불이라는 천문학적 거금이 투자된 SF [아이 로봇]은 북미시장에서만 1억 4천4백만불의 흥행수익을 거둬들였고 주연을 담당한 윌 스미스와 알렉스 프로야스는 한층 더 주가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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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쿵후스타 이소룡의 아들 브랜던 리]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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