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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와 트뤼포 François Truffaut

프랑스/누벨바그

by 켄2 2008. 7. 20.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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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프랑스 빠리 출생으로 일찌기 부모가 이혼한 탓에 치과의사였던 생부의 얼굴을 한번도 보지 못한채 자란 트뤼포는 엄마와 재혼한 계부로부터 Truffaut라는 성을 받았다.

어린시절 주로 외할머니의 손에 키워진 트뤼포는 8살무렵부터 영화보기를 즐겼으며 그가 처음 본 아벨 강스의 영화는 어린 그에게 너무나도 강렬한 인상을 남겨주었다. 이후, 학교를 무단결석하고 극장으로 몰래 숨어들어가 무임관람을 즐기는 날이 많아진 불량학생 트뤼포는 결국 14살이 되던해 학교를 그만두었다.

이듬해인 1947년 그의 나이 15살이 되던해 영화클럽을 결성한 트뤼포는 자신의 후견인이자 보호자가 된 프랑스의 저명한 비평가 앙드래 바쟁을 만난다. 1950년 프랑스군에 입대했다, 탈영하여 범법자가된 트뤼포는 앙드래 바쟁의 도움으로 사면을 받게되고 1953년 처음으로, 앙드래 바쟁이 창간한 영화비평지 까이에 뒤 시네마지에 자신의 영화평을 기고했다.

까이에 뒤 시네마 시절 도전적이고 독설적인 영화평으로 악명이 자자했던 뜨뤼포는 1954년 발표한 글 [프랑스 영화의 어떤 경향 Une Certaine Tendance du Cinéma Français]을 통하여 정립한 자신만의 작가이론으로 프랑스 영화 감독들을 평가하기 이르렀고 1955년 자신의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 단편영화 촬영을 시작했다.

1958년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개최된 엑스포 58에서 오손 웰즈감독의 [Touch of Evil]를 보고 영감을 얻은 그는 1959년 프랑스 영화사상 가장 유명한 데뷔작 중 하나이자 누벨바그의 서곡인 [400번의 구타 Quatre cents coups, Les]를 연출하고 장편데뷔했으며 데뷔작으로 깐느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바로 전해인 1958년, 깐느 영화제는 프랑스영화의 송장벌레라는 독설을 퍼부움으로 깐느영화제 조직위원들의 반발을 샀었다. 

데뷔작 [400번의 구타]의 비평적 성공에 힘입은 트뤼포는 1960년 아메리칸 필름 느와르와 누벨바그의 작품성향이 융합된 두번째 작품 [피아니스트를 쏴라 Tirez sur le pianiste]를 완성했으며 1962년 60년대 프랑스 영화계를 대표하는 여우 잔느 모로의 대표작이자 프랑스 영화사상 가장 뛰어난 로맨틱 드라마로 꼽히는 [쥴 앤 짐]를 발표했다.

이후, [부드러운 살결 Peau douce, La(64)] 미국작가 레이 브래드버리의 소설을 각색한 SF영화 [화씨 451 Fahrenheit 451 (66)] [검은 옷을 입은 신부 Mariée était en noir, La (68)] [도둑 맞은 키스 Baisers volés(68)]
[미시시피 인어 Sirène du Mississipi, La (69)]등의 60년대 작품을 통해 전성기를 구가한 그는 1971년 자신의 대표작인 [쥴 앤 짐]에 비견되는 또하나의 트라이앵글 러브스토리인 [두 영국여자와 대륙 Deux anglaises et le continent, Les]을 연출했다.

1973년 자신이 직접 영화속의 영화감독역을 연기하며 영화매니아로서의 영화애 대한 열정과 애정을 담아낸 [아메리카의 밤 Nuit américaine, La]을 연출하고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했으며 1975년작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차녀 아델 위고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전기드라마 이자벨 야자니 주연의 [아델 H. 의 사랑이야기 Histoire d'Adèle H., L'] 와 [여인을 사랑한 남자 L' Homme qui aimait les femmes (77)] [녹색 방 Chambre verte, La (78)] [마지막 지하철 Dernier métro, Le (80)] 그리고 제라르 드파르디유, 화니 아르당 주연의 멜로 드라마 [이웃집 여인 Femme d'à côté, La (81)]등 자신의 후기 대표작을 발표한 트뤼포는 1983년 뇌종양 진단을 받은채 자신의 마지막 연인이었던 프랑스 여우 화니 아르당이 주연한 코믹 스릴러 [Vivement dimanche! (83)]을 연출하였으며 이 영화를 마지막 작품으로 남기고 1984년 10월 21일 프랑스 세느강변의 자택에서 사망했다.

그의 시신은 프랑스 파리의 몽마르뜨 묘지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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