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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드 히치콕 Alfred Hitchcock

마에스트로

by 켄2 2008. 7. 13.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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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최초의 스타감독이자 서스펜스의 제왕, 스릴러의 대가인 알프레드 히치콕은 1899년 영국 런던의 레이튼스톤에서 출생했다. 청과상이었던 아버지 윌리암 히치콕의 셋째로 태어난 히치콕은 엄격한 로만 카톨릭 가정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특히 어린시절 히치콕의 아버지가  그의 잘못을 꾸짖기위해 히치콕을 10분간 경찰서 유치장에 가둬줄것을 요구한 일화는 너무나도 유명하고 이는 후에 히치콕이 자신의 작품에서 누명을 쓴 등장인물이나 용의자를 표현하는데 반영되곤하였다.

1920년대초 미술파트 잡역부로 영화산업에 뛰어든 히치콕은 1922년 첫번째 연출기회를 얻고 스릴러 [넘버 13]의 제작에 착수하지만 이는 끝내 완성을 거두지 못하였으며 1925년 게인스브루 픽처스의 마이클 발콘의 주선으로 첫번째 장편인 [The Pleasure Garden]을 연출하였다.

1926년 자신의 첫 번째 성공작이자 스릴러의 제왕으로서의 첫걸음을 걷게한 스릴러 [The Lodger]을 발표하고 평론가들의 시선을 모은 히치콕은 같은 해, 자신의 조감독이었던 알마 레빌과 결혼하였으며 1929년 자신의 열번째 작품인 [블랙 메일]을완성하였는데 이는 영국 영화 최초의 유성영화였고 동시에 히치콕 특유의 서스펜스 스타일이 정립된 작품이기도 했다.

1934년 영국의 유명 제작자 마이클 발콘과 다시 손잡고 연출한 [너무 많이 아는 남자 The Man Who Knew Too Much ]와 이듬해 완성한 [39계단]을 성공시키고 단숨에 스릴러의 제왕으로 등극한 히치콕은 [39계단]을 통해 처음으로 자신의 아이콘이기도 한 맥거핀이라는 개념을 소개하였다.

1938년작 미스테리 스릴러 [The Lady Vanishes]를 크게 성공시켰으며 1939년 [Jamaica Inn]을 마지막으로 미국으로 건너간 히치콕은 미국의 거물 프로듀서인 데이빗 셀즈닉과 7년 계약을 한 후, 1940년 헐리우드 입성작인 로렌스 올리비에 주연의 미스테리 스릴러 [레베카]를 완성하였다.

1941년 비록 [분노의 포도]를 연출한 존 포드에게 밀려 감독상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레베카]의 성공으로 영국뿐 아니라 헐리우드내에서의 입지를 굳힌 히치콕은 게리 그란트 주연의 [의혹 Suspicion (41)] 과 [파괴공작원 Saboteur (42)] [의혹의 그림자 Shadow of a Doubt (43)] 등의 스릴러 작품을 통해 미국관객에게 스릴러의 대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으며 2차 대전중이던 1943년 잠시 영국으로 돌아가 영국 정보국과 자유 프랑스군을 위해 두편의 단편 영화를 연출하였다.

1944년 [구명선]과 1945년 잉그릿드 버그만 주연의 [망각의 여로 Spellbounds], [오명 Notorious] 그리고 1948년 제임스 스튜어트 주연의 [로프]등을 연출했으며 1951년 영화 [태양은 가득히]의 원작자로 유명한 패트리시아 하이스미스의 범죄소설을 각색한 [열차의 이방인]을 시작으로 1953년 몽고메리 클리프트의 [나는 고백한다 I Confess]와 그레이스 켈리 주연의 [다이알 M을 돌려라 Dial M for Murder (54)]와 [이창 Rear Window (54)] 자신의 34년 동명작을 리메이크한 [나는 비밀을 안다/너무 많이 아는 남자 (56)] 과 [버티고 (58)]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59)]등의 주옥같은 50년대 대표작을 연출하였다.

1960년 서스펜스 호러의 최고 걸작이자 자신의 후기 대표작인 [싸이코]를 완성하였으며 1963년, 1939년작 [Jamaica Inn]과 1940년작 [레베카]에 이어 3번째로 영국작가 Daphne Du Maurier의 작품을 각색한 패닉 호러 [새]를 연출하였다. 이후 숀 콘네리, 티피 헤드렌 주연의 [마니(64)]와 폴 뉴면 주연의 [찢어진 커튼 (64)] 그리고 [엑소더스-영광의 탈출]로 유명한 베스트 셀러작가 Leon Uris의 소설을 각색한 [토파즈]등의 작품을 연출한 히치콕은 1972년 모국 영국으로 돌아가 자신의 생애에 있어 마지막 흥행작으로 남은 [프렌지]를 완성하였다.

1976년 연출작 카렌 블랙, 브루스 던 주연의 코믹 스릴러 [Family Plot]를 마지막 작품으로 남긴 히치콕은 1980년 영국여왕 엘리자베스 2세로 부터 기사작위를 받았으며 그로 부터 4개월뒤 캘리포니아의 자택에서 신장쇠약으로 80세의 생을 마감했으며 화장된 그의 유해는 태평양에 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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