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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메켄드릭 Alexander Mackendrick

브리티쉬

by 켄2 2014. 1. 21.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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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영화사상 가장 걸출한 연출가 중 한명으로 꼽히는 메켄드릭은 1912년 미국 보스턴에서 글래스고우 태생의 스코트랜드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외동 아들이었던 메켄드릭은 여섯살때 일차대전 직후 미국 전역을 강타한 유행성 인플루엔자로 인해 아버지를 여의고 일곱살때 홀로된 어머니에 의해 조부모가 있는 스코틀랜드로 보내졌다.

글래스고우에서 예술학교를 졸업한 메켄드릭은 런던으로 이주하여 10여년간 광고계에 종사하며 경력을쌓았고 이차대전이 발발하자 정보부에 입대하여 심리전 전담 부대에 배치되었으며 이태리와 알제리 지역을 돌며 프로파간다 필름을 제작하였고 이 때 그가 촬영한 필름 중 일부는 후에 롯셀리니가 연출한 [무방비 도시]에 삽입되었다.

종전 후, 시나리오작가로 일링 스튜디오에 입사하였으며 1949년 일링 스튜디오의 코믹 범죄극 [위스키 천국 Whisky Galore!]으로 데뷔한 후, 일링 코미디의 패턴을 답습하면서도 때로는 정반대로 그 방식을 뒤집는 날카로움으로  [흰색 양복의 사나이 The Man in the White Suit (51)]그리고 [레이디 킬러 The Ladykillers (55)]등과 같은 작품을 발표, 절정의 기량을 보여줬다.

1955년 재정위기를 극복하지 못한 일링스튜디오가 끝내 도산하자 영국 영화산업에 염증을 느낀 메켄드릭은 미국으로 건너가 버트 랭카스터, 토니 커티스 주연의 [성공의 달콤한 향기 Sweet Smell of Success (55)] 를 연출하고 좋은 성적을 거두었으나 이 후에 손을 댄 두편의 작품 [악마의 제자 The Devil's Disciple (59)]와 [나바론의 요새 The Guns of Navarone (61)]의 촐영단계에서 잇달아 해고되는 불운을 겪었다.

1963년 다시 영국으로 돌아온 그는 [남쪽으로 가는 새미 Sammy Going South (63)] [자메이카의 거센 바람 A High Wind in Jamaica (65)] 등의 60년대 작품을 발표했으며 1967년 헐리우드에서 자신의 은퇴작이 된 토니 커티스, 끌라우디아 까르디날레 주연의 코믹 멜로 [풍파는 이제 그만 Don't Make Waves ]를 연출했다.


현역에서 은퇴한 후, 월트 디즈니가 설립한 칼아츠 California Institute of the Arts에서 교편을 잡고 후진양성에 힘쓰며 현역시절에 못지 않은 명성을 얻었던 메켄드릭은 1993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폐렴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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