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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리 큐브릭 Stanley Kubrick

마에스트로

by 켄2 2008. 3. 17.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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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미국 뉴욕 맨하탄 출생으로 오스트리아 혈통의 유태계 의사인 아버지에게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사준 카메라로 사진촬영을 즐겼던 큐브릭은 고교시절 잡지사에 자신의 사진작품을 팔기 시작했으며 후에 매거진 [룩]의 프리랜서 포토그래퍼로 활동했다. 프리랜서 작가 시절 첫번째 결혼을 한 큐브릭은 3년만에 이혼하게되며 이때부터 뉴욕의 극장가와 맨하튼의 Museum of Modern Art에서 영화보기에 몰두했다. 이때 그는 막스 오퓔스의 작품을 자주 보았으며 이는 후에 그의 작품스타일에 큰 영향을 주었다.

1951년 친구의 권유로 다큐멘터리 촬영을 시작한 큐브릭은 1953년 폴 마주르스키가 출연한 전쟁물 [공포와 욕망]으로 데뷔한 이래 1955년 느와르 스타일의 스릴러 [Killer's Kiss]와 1956년 발표한 [Killing]으로 업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며 1960년 당시 제작자이자 스타로서 막강한 파워를 누리던 커크 더글라스에 의해 촬영개시 2주만에 해고된 앤소니 만의 뒤를 이어 [스팔타커스]의 메거폰을 쥐게되었다. 하지만 큐브릭 자신 또한 커크 더글라스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연출환경에서 작업을 마쳤으며 후에 자신의 작품리스트에서 [스팔타커스]는 언급하질 않았다.

[스팔타커스]이후, 마론 브란도의 [원 아이드 잭(61)]을 연출하기로 했던 큐브릭은 마론 브란도 자신이 직접 연출할 것을 강력히 원하는 바람에 무산되었고 큐브릭은 영국으로 건너가 러시아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소설을 영화화한 [로리타]를 연출했다. 이듬해 1962년 연출한, 피터 셀러스의 1인3역 연기로 유명한 걸작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 또한 그가 영국에서 완성한 작품이었고 이로부터 6년후인 1968년 큐브릭은 영화사상 가장 뛰어나고 독창적인 SF로 오늘날 까지 추앙받는 그의 대표작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를 연출했다.

1973년 당시 충격적이고 폭력적인 묘사로 인해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문제작 [시계태엽의 오렌지]를 완성한 그는 뉴욕 평론가협회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했으며 1980년 스티븐 킹의 대표적 호러소설 [샤이닝]을 완성하고 다시 한번 평단의 갈채를 받았다.

[샤이닝]이후 7년만에 베트남전을 소재로한 [풀 메탈 자켓]을 연출했으며 1999년 오랜 침묵끝에 다시 연출을 재개한 큐브릭은 마지막 작품 [와이즈 아이드 샷]의 편집과정을 남겨둔 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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