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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극(徐 克) Hark Tsui

중화권/홍콩 뉴웨이브

by 켄2 2008. 3. 24.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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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프랑스령 코친차이나(현 베트남 남부)출생으로 13세의 어린시절부터 8mm 단편영화를 찍기 시작한 서극은 1966년 홍콩으로 이주했다. 1969년 미국으로 유학, Southern Methodist University을 거쳐 오스틴의 텍사스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했으며 졸업후, 1975년 뉴욕으로 이주하여 차이나타운의 신문사와 중국어 케이블 방송국에서 근무했다.

1977년 홍콩으로 귀국한 서극은 TVB의 프로듀서로 입사하였고 1979년 영화 [접변]으로 데뷔했다.1980년 [제1유형위험]을 발표한 서극은 홍콩 당국의 검열로 인해, 상업적으로 완전한 실패를 맛보았으나 이듬해 연출한 [귀마지다성]으로 흥행성공을 거두었다. 영화 [귀마지다성]은 서극이 작가에서 상업성 위주의 흥행사로 돌아서는 분기점이 된 작품이 되었으며 1983년 골든 하베스트사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SFX 무협물 [촉산]을 연출했다.

80년대 홍콩 뉴웨이브의 선두주자로 부상한 서극은 1984년 자신의 영화사인 전영공작실을 설립하고 영화 제작을 시작했다. 항상 번득이는 기상천외의 아이디어와 시대를 앞서가는 기획력을 보이며 다수의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했으며 [상하이블루스(84)] [도마단(86)]을 연출하고 [영웅본색(86)] [천녀유혼(87)]등을 기획 제작했다.

1989년 오우삼이 떠난 [영웅본색]의 마지막편을 연출하였으며 1990년 [소오강호] 1991년 [황비홍] 등의 무혐물을 발효했으며 특히 [영웅본색 3]과 [소오강호]의 실패이후, 연출한 [황비홍]은 홍콩뿐 아니라 아시아권에서 크게 히트하며 주연배우 이 연걸과 연출자 서극의 위치를 다시한번 아시아 최정상에 올려놓았다. 이후 [황비홍]의 후속편과 [청사(93)] [서극의 칼(95)]등의 작품을 발표한 서극은 97년 미국시장으로 진출, 장끌로드 반담을 캐스팅한 저예산의 액션영화 [더블 팀(97)]과 [넉 오프(98)]을 연출했으나 비평가들의 혹평속에 초라한 흥행서적으로 막을 내렸다.
미국시장에서의 실패를 맛보고 다시 홍콩으로 돌아온 서극은 신세대 배우들을 캐스팅한 액션물 [순류 역류(00)]와 자신의 83년작 [촉산]을 최첨단 CG로 리메이크한 [촉산전]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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