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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키노 비스콘티 Luchino Visconti

이탈리아/네오 리얼리즘

by 켄2 2008. 9. 14.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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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이태리 롬바르디 밀란출생의 비스콘티는 빗토리오 데 시카, 로베르토 롯셀리니와 더불어 이태리 네오리얼리즘을 대표하는 거장으로 본명은 Luchino Visconti di Modrone 이다.

북부이태리 지방에서 가장 부유한 귀족가문의 후손인 비스콘티는 공작의 작위를 가진 아버지 Giuseppe Visconti di Modrone에게서 태어났으며 부유한 교육환경의 영향으로 어린시절부터 미술, 연극 , 음악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접하고 지냈으며 그 부분에 있어 이태리를 대표하는 대가들과도 자주 만남을 가지곤 하였다.

30세가 되던 1936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프랑스의 거장 장 르느아르 휘하의 연출부 스탶으로 일하며 영화 연출에 관한 실무를 익혔으며 미국헐리우드를 거쳐 이태리로 돌아와 1943년 필름 느와르 계열의 크라임 스릴러 [강박관념 Ossessione]으로 데뷔했다.

미국의 작가 제임스 M. 케인의 [우편배달부는 벨을 두번 누른다]를 번안한 이작품은 이태리 네오리얼리즘을 태동시킨 첫 작품으로 평가받고있다. 1945년 71분짜리 흑백 다큐 [Giorni di gloria]를 발표한 비스콘티는 종전 후, 이태리 공산당의 당원이 되었으며 1948년 자신의 초기 대표작인 [대지는 흔들린다 Terra trema: Episodio del mare, La]를 발표했다.

1954년 테크닉 컬러 필름으로 촬영한 전쟁 서사극 [Senso]를 통해 리얼리즘과 로맨티시즘의 결합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보이며 자신의 출발점인 네오리얼리즘과 멀어진 비스콘티는 1960년대 들어서 네오리얼리즘과 완전히 결별하고 탐미주의적 경향속으로 빠져 들기 시작했다. 일부 전기작가들은 이오 같은 비스콘티의 변화를 두고 네오리얼리즘에서 벗어난 비스콘티는 형식주의가 빠진 세르게이 에이젠쉬타인이며 표현주의를 이탈한 프리츠 랑과 같다고 평했다.

1971년 자신의 탐미주의적인 작품관의 결정체라 할수 있는 후기 대표작 [베니스에서의 죽음 Morte a Venezia]을 연출하였으며 1976년 그의 유작이 된 [Innocente, L']의 촬영을 마친후, 이태리 로마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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