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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 페레리 Marco Ferreri

이탈리아/포스트 네오리얼리즘

by 켄2 2011. 5. 12.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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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이태리 영화계의 전성기에 등장한 일련의 신인 감독중 파졸리니와 더불어 가장 많은 논란을 일으킨 이단아 마르코 페레리는 1928년 이태리 밀라노에서 태어났다.

스페인계 밀라노인 이었던 그는 광고 프로덕션에서 기초를 닦은 후, 스페인 영화계에서 영화경력을 시작했으며 1963년 이태리 영화계 입문작인 [여왕벌 L'ape regina]을 발표하고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후, 같은 스페인계 작가인 라파엘 아츠코나와의 공동 작업을 통해 강박증, 모럴이 배제된 성적 표현과 죽음등 파괴적이고 외설적인 요소들과 사회비판적 은유를 담은 일련의 작품을 내놓으며 유럽영화계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하지만 논란과 스캔들로 점철된 작품활동속에서도 1969년 발표한 그의작품 [딜린저는 죽었다 Dillinger è morto]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파졸리니 그리고 베르톨루치와 같은 당대의 쟁쟁한 작가들의 작품을 제치고 이태리 비평가들이 선정한 최고의 작품으로 선정되었으며 1973년 자신의 작품중 가장 널리 알려진 [거대한 연회 La grande bouffe ]를 연출했다.

제라르 드파르디유와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니등 프랑스와 이태리를 대표하는 두 거물배우가 공연한 1978년작 코믹 판타지 [바이 바이 몽키  Ciao maschio]와 로베르코 베니니주연의 코믹 드라마 [망명을 요청한다 Chiedo asilo]등 70년말 발표한 두작품을 통하여 깐느와 베를린등 유럽을 대표하는 국제 영화제에서 평단의 환호와 갈채를 받으며 70년대를 마감한 페레리는 80년대 들어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예전의 감각을 잃어간다는 혹평을 받았다.

1991년 평단이 꼽는 자신의 후기 걸작 [하우스 오브 스마일 La casa del sorriso]으로 베를린 영화제 금공상을 수상했으며 영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며 발표한 [Nitrato d'argento]를 마지막 연출작으로 남기고 1997년 프랑스 파리에서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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