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와 80년대를 풍미한 마초 이미지의 헐리우드 스타 버트 레이놀즈는 1936년 미국 조지아주 웨이크로스 출생으로 본명은 Burton Leon "Burt" Reynolds Jr.이다.
체로키 인디언의 혈통을 가진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그는 어린시절 가족과 함게 플로리다주로 이주하였으며 플로리다 주립 대학에 풋볼 장학생으로 입학하여 남부지역 대학 올스타에 선발 될 정도의 출중한 실력과 잘생긴 용모로 여학생들의 인기를 한몸에 모았다.
하지만 대학 시절 무릎 부상으로 풋볼을 포기하게 된 레이놀즈는 배우의 꿈을 안고 뉴욕으로 이주 레스토랑과 클럽등지에서 일하며 연기학원과 연극무대를 통하여 연기를 배웠다.
50년대말 방송계로 진출하여 연기활동을 시작한 그는 [리버 보트] [건 스모크]와 같은 유명 웨스턴 씨리즈에 출연하였으나 이렇다 할만한 주목을 받지 못하다 1972년 존 부어맨의 어드벤처 스릴러 [서바이벌 게임 Dliverance]에서 연기한 루이스 멜독역으로 비평가들로부터 노력하는 재능있는 배우라는 인정을 받았으며 이 작품을 계기로 레이놀즈는 70년대 터프 가이의 상징적 스타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1973년 007 씨리즈의 제작자인 알버트 브로콜리로부터 숀 코넬리의 뒤를 이은 본드 역을 제안 받은 레이놀즈는 "제임스 본드를 미국인이 연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라는 단 한마디로 거절했으며 이후, 로버트 알드리치 [The Longest Yard (74)] [허슬 (75)]스탠리 도넨의 [럭키 레이디 Lucky Lady (75)] 그리고 70년대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작품인 핼 니담의 [스모키와 밴디트 Smokey and the Bandit (77)]에 출연하고 헐리우드의 흥행을 좌우하는 최고의 스타로 자리잡았다.
1976년 자신이 로렌 휴튼과 공연하며 메가폰을 잡은 크라임 액션물 [게이터]를 통하여 연출가로 정식 데뷔한 레이놀즈는 1981년 자신의 세번째 연출작인 스릴러물 [샤키 머신 Sharky's Machine]으로 전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하고 연출감각까지 인정받았다.
[스모키와 밴디트] 씨리즈와 홍콩 골든하베스트사가 투자한 레이스 무비 [캐논 볼 The Cannonball Run]씨리즈 그리고 돌리 파튼과 공연한 [Stroker Ace (73)]등, 핼 니담 감독과 오랜 공조 작업으로 완성한 일련의 80년대 로드 레이스 무비로 강한 남성상을 부각시킨 그는 80년대 마초 스타로 오랫동안 영화팬들 머리속에 각인되었으며 1998년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부기 나이트]로 생애 첫 오스카 연기상 후보에 올랐다.